AI Operating Model
AI 시대에 사람의 판단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
AI가 실행을 가져갈수록 사람에게는 더 적은 수의, 더 중요한 판단이 남습니다. Human Premium을 역량 이름이 아니라 판단을 어디에 배치하고 어떻게 조직의 반복 가능한 기준으로 남길 것인가의 문제로 봅니다.
2026.09.07 · 20분 읽기

AI 시대에 사람의 판단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
문제는 '사람에게 더 높은 스킬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어떤 판단을 남길 것인가'다
AI가 반복적인 일을 대신하면 사람은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이제 낯설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더 중요한 일'은 정확히 무엇인가.
자료를 찾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초안을 만들고, 여러 선택지를 비교하는 일까지 AI가 맡기 시작하면 사람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은 줄어든다. 대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하고, AI가 내놓은 결과를 믿어도 되는지 판단하고, 예외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고, 마지막 결과에 책임져야 하는 일이 남는다.
그래서 AI 시대의 Human Premium을 사람에게 더 높은 수준의 스킬이 필요하다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Human Premium — 이 글에서 사용하는 개념적 표현이다. AI가 실행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환경에서도 사람이 맡을 때 더 큰 가치가 생기는 영역을 뜻한다. 학계에서 하나의 정립된 단일 개념으로 통용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어떤 일을 사람에게 남길 것인가. 어떤 역량을 AI에 넘길 것인가. 어떤 판단만큼은 사람이 계속 맡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조직 안에서 어떻게 계속 만들어낼 것인가.
결국 Human Premium은 개인이 가진 스킬 목록보다 판단을 어디에 배치하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이 글은 그 배치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에게 어떤 판단을 남길지 설계하지 않으면, 자동화는 늘어나도 그 결과를 검증할 사람은 조직 안에서 사라진다.
AI가 바꾸는 것은 생산성보다 먼저 '일의 구조'다
기업에서 AI를 도입할 때 자주 나오는 질문이 있다.
어떤 AI 도구를 직원에게 제공할 것인가.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 지금 하는 업무 중 무엇을 자동화할 수 있는가.
모두 필요한 질문이지만, 조금 늦게 물어도 되는 질문들이다.
더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가다.
예를 들어 사람이 자료를 수집하고, 엑셀에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상사가 검토한 뒤 다른 시스템에 다시 입력한다고 해보자.
각 단계에 AI를 붙이면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수 있다.
그런데 자료를 다시 입력하는 단계가 애초에 필요 없는 일이라면 어떨까. 보고서와 별도로 중간 파일을 만드는 이유가 과거 시스템의 제약 때문이라면 어떨까. 모든 건을 사람이 승인하는 방식 역시 실제 위험 때문이 아니라 오랜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 경우 AI를 적용해 기존 업무를 빠르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필요 없는 일까지 더 빠르게 수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이를 분리 진단(Decoupling Diagnostic)의 관점에서 본다.
분리 진단(Decoupling Diagnostic) — 이 글에서 사용하는 개념적 표현이다. 하나의 업무로 묶여 있는 활동을 자료 수집, 전달, 판단, 작성, 승인, 기록 등으로 분해한 뒤 이 활동들이 왜 지금처럼 연결되어 있는지 다시 묻는 방식을 가리킨다. 학계에서 통용되는 표준 방법론의 이름은 아니다.
지금 하나의 업무로 묶여 있는 활동을 나눠본다. 그리고 왜 이 활동들이 지금처럼 연결되어 있는지 다시 묻는다.
그 뒤에야 각각을 사람, AI, Agent, System 중 누가 맡는 것이 적절한지 다시 배치할 수 있다.
결국 AX에서 중요한 것은 기존 프로세스에 AI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일의 구조를 다시 보는 것이다.
분석 단위도 직무 이름보다 아래로 내려갈 필요가 있다.
기존에는 흔히 사람을 직무(Job)와 역할(Role), 스킬(Skill)로 설명했다. AI가 실제 업무 안으로 들어오면 이 구조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일이 성과를 만들고 있는지, 그 일을 이루는 Task는 무엇인지, Task를 잘 수행하려면 어떤 역량(Capability)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역량을 사람과 AI 중 어디에 둘 것인지를 함께 봐야 한다.
업무 구조(Work Architecture)를 이 순서로 정리해보면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AI 활용 역량이 몇 점인가가 아니다.
이 사람은 AI와 함께 이 일을 어느 수준의 품질로 수행할 수 있는가.
여기에 가까워져야 한다.
'AI가 할 수 있는 일'과 'AI에 맡겨야 할 일'은 같지 않다
기술적으로 자동화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자동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AI 도입 논의에서는 이 둘이 자주 섞인다. AI가 이 일을 할 수 있는가와 AI가 이 일을 맡아야 하는가는 전혀 다른 질문이다.
여기에 조직은 한 가지를 더 물어야 한다.
AI가 이 일을 맡는다면, 사람은 무엇을 계속 배워야 하는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업무에 눈에 보이는 산출물 외의 가치도 있기 때문이다.
자료 조사나 데이터 정리, 초안 작성은 겉으로 보면 자동화하기 좋은 업무다. 특히 숙련자에게는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초기 경력자에게는 다르게 작동한다.
직접 자료를 찾으면서 어떤 출처를 믿을 수 있는지 익힌다. 여러 사례를 비교하며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한다. 초안을 쓰면서 생각을 구조화하는 법을 배우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의 차이를 체득한다.
겉으로 보이는 산출물은 보고서 한 장이지만, 그 과정에서는 사람의 판단력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지점을 짚은 조사가 있다.
Microsoft Research와 카네기멜런대 연구진이 2025년 CHI에서 발표한 연구는 지식 노동자 319명을 대상으로 생성형 AI를 쓸 때의 비판적 사고를 살폈다.
생성형 AI 도구는 비판적 사고에 드는 노력을 줄여준다고 인식됐지만 동시에 과의존을 유도했다. AI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는 줄어들었고, 반대로 자신의 업무 역량에 대한 자신감이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는 늘어났다.
연구진의 정리는 이렇다. 지식 노동자는 AI의 결과를 점검하고 개선하고 방향을 잡을 역량을 갖추지 못했을 때 비판적 사고 자체를 시도하지 않게 된다.
자기 보고에 기반한 설문이므로 인과관계를 확정한 연구로 읽어서는 안 된다. 다만 검증 역량과 검증 행동이 함께 움직인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여기서 불편한 순환이 보인다.
검증할 역량이 없으면 검증하지 않는다. 검증하지 않으면 검증할 역량도 자라지 않는다.
이 부분을 전부 AI에 넘기면 단기적으로는 빠르다. 문제는 몇 년 뒤다.
AI의 결과가 잘못됐을 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그래서 내부적으로 AI 위임 경계(AI Delegation Boundary)를 볼 때는 생산성만 계산하지 않는다.
AI 위임 경계(AI Delegation Boundary) — 이 글에서 사용하는 개념적 표현이다. 어떤 업무를 AI에 넘기고 어떤 업무를 사람에게 남길지 정할 때, 시간 절감뿐 아니라 새로 생기는 검증 부담과 역량 퇴화까지 함께 계산해 그 경계를 정하는 관점을 뜻한다. 정해진 학술 용어라기보다 판단을 정리하기 위한 틀에 가깝다.
시간이 얼마나 줄어드는지와 함께 새롭게 생기는 검증 부담, 실패 위험, 역량 퇴화, 관계 손실, 데이터 위험까지 함께 본다.
자동화의 가치는 얼마나 많이 없앴는가보다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남겼는가에서 결정된다.
AI가 실행을 가져가면 사람에게는 '판단'이 남는다
AI가 검색, 비교, 작성, 계산, 분류, 실행을 더 많이 담당한다고 가정해보자.
사람의 역할은 단순히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무엇을 문제로 볼지 정해야 한다. 여러 선택지 중 무엇을 택할지 결정해야 한다. 좋은 결과가 무엇인지 기준을 세워야 한다. 예외 상황을 해석해야 한다. AI가 반복해서 실패할 때 무엇을 바꿔야 할지 찾아야 한다. 마지막에는 그 결정에 책임져야 한다.
이 가운데 앞으로 특히 중요해질 역할은 좋은 결과의 기준을 정의하는 일이다.
AI가 보고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사람에게 필요한 능력은 보고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작성하는 능력만은 아니다.
좋은 보고서라면 반드시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근거가 없으면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되는지, 어떤 상황에서는 추가 검증이 필요한지, 무엇을 오류로 볼 것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막연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와 조금 다르다.
자신이 가진 판단 기준을 다른 사람이나 시스템도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만드는 능력에 가깝다.
사람의 판단이 머릿속에만 있으면 조직의 자산이 되기 어렵다
과거에는 숙련자가 직접 결과물을 검토하는 것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았다.
팀원이 보고서를 가져오면 팀장이 읽어보고 수정한다. 잘못된 부분을 설명하고 다시 작성하도록 한다.
업무량이 사람의 처리 속도에 맞춰져 있을 때는 이 방식이 작동한다.
Agent가 수백 건, 수천 건의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숙련자가 모든 결과물을 읽는 방식으로는 확장하기 어렵다.
여기서 사람의 판단을 다른 형태로 바꿀 필요가 생긴다.
예를 들어 프로세스 진단을 수행하는 Agent가 고객이 직접 말하지 않은 내용을 근본 원인으로 단정하는 문제가 반복된다고 하자.
숙련된 컨설턴트라면 바로 알아차린다. 관찰된 사실과 가설이 섞여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여기에서 수정 지시를 내리고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Agent 환경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
관찰된 사실과 가설을 구분한다. 근본 원인에는 근거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근거가 충분하지 않으면 가설로 남긴다.
이 판단을 평가 기준(Eval)이나 검증기(Validator), 스키마(Schema) 같은 형태로 바꾸면 다음 실행부터 같은 기준을 반복해서 적용할 수 있다.
한 사람의 피드백이 한 번의 수정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 수백, 수천 번의 실행에 영향을 준다.
Agent 개선 루프가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행에서 남은 기록(Trace)이 피드백이 되고, 피드백이 평가 기준이 되고, 평가 기준이 개선과 회귀 검증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개인의 경험이 시스템의 품질 기준으로 남는다.
그러면 사람의 역할도 조금 달라진다.
모든 결과물을 직접 검사하는 산출물 검토자보다, 무엇을 좋은 결과로 볼 것인지 설계하는 품질 기준 설계자에 가까워진다.
AI 시대의 Human Premium은 판단을 잘하는 능력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좋은 판단을 조직이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그렇다고 모든 단계에 사람을 넣으면 다시 사람이 병목이 된다
AI 시스템을 설계할 때 사람의 개입(Human-in-the-Loop)을 강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중요한 결정에 사람의 검토를 남겨두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사람의 개입(Human-in-the-Loop) — 자동화된 시스템의 판단이나 실행 과정에 사람의 검토와 승인 단계를 남겨두어, 최종 결과에 사람이 개입할 수 있게 설계하는 방식을 말한다.
하지만 모든 결과를 사람이 검토해야 한다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Agent가 처리하는 업무는 10배 늘었는데 사람의 검토 능력은 그대로라면, 곧 검토 대기열이 새로운 병목이 된다.
더 나쁜 경우도 있다.
검토해야 할 결과가 너무 많아 사람이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고 승인 버튼만 누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현상에는 이미 이름과 근거가 있다. 자동화 편향(Automation Bias)이다.
2012년 미국의료정보학회지(JAMIA)에 실린 체계적 문헌고찰은 13,821편의 논문 가운데 74편을 선별해 자동화 편향의 빈도와 매개 요인, 완화 방법을 정리했다.
사람은 자동화된 시스템의 결과를 꼼꼼히 확인하는 대신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운다. 그 경향을 키우는 환경 요인으로 지목된 것은 업무량과 과제 복잡도, 그리고 시간 압박이었다.
반대로 이를 줄이는 요인은 교육, 사용자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 그리고 시스템이 조언을 제시하는 방식의 설계였다.
자동화 편향(Automation Bias) — 사람이 자동화된 시스템의 출력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과도하게 신뢰하는 경향을 말한다. 잘못된 제안을 그대로 따르는 실행 오류(commission)와, 시스템이 알려주지 않아 필요한 조치를 놓치는 누락 오류(omission)로 나타난다.
이 연구는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의료 분야 문헌고찰이므로 결과를 그대로 AI Agent 환경에 옮길 수는 없다. 다만 검토자가 감당할 수 없는 양과 시간 압박에 놓이면 검토가 형식으로 바뀐다는 구조는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형식적으로는 사람이 개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통제도 하지 못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사람을 지렛점에 배치한다는 방향이 나온다.
사람을 모든 단계에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판단 한 번이 전체 시스템의 품질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에 배치하는 것이다.
Agent 실행이 수천 건이라면 사람이 수천 건을 모두 보는 대신, 시스템이 먼저 반복되는 이상 행동을 찾는다.
어떤 상황에서 같은 오류가 반복되는지, 어떤 실패가 자주 발생하는지, 빈도는 낮아도 위험이 큰 문제가 무엇인지 좁혀낸다.
사람은 그중 중요한 문제에 집중한다.
실패 패턴을 살펴보고, 실제 원인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어떤 기준이나 구조를 바꿔야 하는지 결정한다.
내부적으로 거시 평가(Macro Eval)를 단순한 Agent 평가 방법이 아니라 사람의 주의를 어디에 집중시킬 것인가를 정하는 장치로 보는 이유다.
거시 평가(Macro Eval) — 이 글에서 사용하는 개념적 표현이다. 개별 실행의 정답 여부를 하나씩 채점하는 대신, 다수의 실행을 가로질러 반복되는 실패 패턴과 위험 지점을 찾아내 사람이 봐야 할 대상을 좁히는 평가 방식을 뜻한다. 업계에서 합의된 표준 용어는 아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보는 구조가 아니라, 사람이 꼭 봐야 할 것을 더 잘 찾는 구조다.
실행이 싸질수록 판단은 비싸진다
실행 비용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체감이 아니라 측정된 사실이다.
스탠퍼드 HAI의 2025년 AI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언어모델 평가에 널리 쓰이는 MMLU에서 GPT-3.5 수준(64.8점)을 내는 모델에 질의하는 비용은 2022년 11월 백만 토큰당 20.00달러에서 2024년 10월 0.07달러로 떨어졌다. 약 18개월 만에 280배 이상 낮아진 것이다. 과제의 종류에 따라 추론 가격의 하락 폭은 연간 9배에서 900배까지 벌어진다.
물론 이 수치는 특정 성능 기준을 만족하는 모델의 API 가격이며, 기업이 AI를 업무에 도입할 때 드는 전체 비용과 같지 않다. 데이터 정비, 시스템 연결, 검증 체계를 만드는 비용은 이 곡선을 따라 내려가지 않는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실행 비용이 이렇게 빠르게 내려가면 조직 안에서 희소한 자원도 달라진다.
과거에는 정보를 찾고, 정리하고, 계산하고, 문서를 만드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 부분은 AI가 빠르게 줄이고 있다.
반면 다른 것들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는 능력. 어떤 결과를 믿을지 판단하는 능력. 어느 정도의 위험을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능력. 무엇을 좋은 결과라고 부를지 정의하는 능력. 실패에서 다음 규칙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마지막 결정에 책임지는 능력.
구조로 보면 단순하다. 실행 비용이 내려가면 산출물의 양이 늘고, 산출물이 늘면 그것을 평가해야 할 필요도 함께 늘어난다. 그리고 평가 수요가 늘수록 판단 한 번이 갖는 영향력도 커진다.
사람이 직접 처리하는 업무량은 줄어들 수 있다.
대신 한 번의 판단이 영향을 미치는 업무량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성과를 보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Agent의 성과를 관리해야 한다면 사람의 성과관리 역시 같이 바뀌어야 한다. AI가 실행을 많이 맡는 환경에서는 단순한 산출물 개수가 사람의 기여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보고서 20개를 직접 만든 사람과, 좋은 평가 기준 하나를 설계해 이후 1,000개의 Agent 보고서 품질을 높인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기존 방식으로는 후자의 기여를 잡아내기 쉽지 않다.
앞으로는 조금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AI를 얼마나 사용했는가보다 어떤 업무를 새롭게 설계했는가. 얼마나 많은 결과물을 만들었는가보다 결과의 품질 기준을 얼마나 높였는가. 몇 건을 직접 검토했는가보다 반복되는 실패를 찾아 시스템에서 얼마나 줄였는가. 자신의 업무를 얼마나 잘했는가보다 사람과 AI로 구성된 전체 시스템의 역량을 얼마나 높였는가.
개인의 생산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의 기여가 시스템의 역량을 어떻게 바꾸고, 그것이 다시 비즈니스 성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까지 봐야 한다.
그런데 그 판단력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여기에는 꽤 까다로운 역설이 있다.
AI가 반복적이고 초급 수준의 업무를 먼저 가져갈수록, 미래에 고난도 판단을 맡을 사람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기존의 전문가는 대체로 이런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단순한 일을 많이 한다. 실수를 해본다. 비슷한 사례를 계속 본다. 어느 순간 평범한 상황과 이상한 상황을 빠르게 구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반복 경험이 패턴 인식으로 바뀌고, 예외를 겪으면서 판단력이 생긴다.
AI가 앞부분을 대부분 담당하면 이 과정은 갑자기 짧아진다. AI의 결과가 나오고, 사람이 판단한다. 문제는 그 사이가 비어 있다는 점이다.
이 우려가 데이터로도 보이기 시작했다.
스탠퍼드 디지털이코노미랩의 Erik Brynjolfsson, Bharat Chandar, Ruyu Chen은 미국 급여 데이터 기업 ADP의 고빈도 행정자료로 수백만 명의 근로자를 2026년 6월까지 추적했다.
연구진은 경제 전반의 광범위한 고용 대체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먼저 밝힌다.
다만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서 22세에서 25세 사이 젊은 근로자의 고용은, 노출도가 낮은 동년배와 같은 속도로 움직였을 경우와 비교해 19%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경력이 쌓인 근로자에게서는 이에 상응하는 격차가 나타나지 않았다.
눈여겨볼 대목이 두 가지 더 있다.
하나는 이 격차가 해고가 늘어서가 아니라 주로 젊은 근로자의 채용이 줄어들면서 생겼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감소가 AI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쓰이는 직종에 집중됐고, AI가 사람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쓰이는 직종에서는 고용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었다는 점이다.
AI 노출도(AI Exposure) — 특정 직종의 업무 구성이 현재의 AI 기술로 수행 가능한 작업과 얼마나 겹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노출도가 높다는 것이 곧 대체된다는 뜻은 아니며, 대체와 보완 중 어느 쪽으로 쓰이는지는 별도로 봐야 한다.
이 연구는 아직 학술지 심사를 거치지 않은 워킹페이퍼이고, 미국의 특정 급여 데이터에 기반한 상관관계 분석이다. 관찰된 격차를 전부 AI의 인과적 효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방향이 다른 연구도 있다. Tania Babina와 공저자들이 미국 기업의 이력서와 채용공고 데이터를 결합해 분석한 전미경제연구소(NBER) 워킹페이퍼는, AI에 투자하는 기업일수록 위계 구조가 평평해지는 경향을 보고했다. 이때 주니어 직급의 비중은 유의미하게 늘고 중간관리자와 시니어 직급의 비중은 줄었다.
두 연구를 하나의 결론으로 합칠 수는 없다. 관찰한 시기가 다르고, 한쪽은 직종별 고용 수준을, 다른 한쪽은 기업 내부의 직급 구성비를 본다.
한국은 어떨까.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2024년과 2025년 같은 기간(1월부터 11월까지) 자사에 게재된 공고를 비교한 결과, 대기업 정규직 신입 채용 공고는 3,741건에서 2,145건으로 43% 줄었다. 인턴과 계약직을 포함한 전체 신입 공고 감소율이 34%였으니, 정규직 신입의 감소 폭이 더 컸다.
업종별로는 IT·통신이 899건에서 293건으로 67% 줄어 가장 크게 감소했고, 건설·토목 53%, 판매·유통 44%, 서비스 38%, 제조·생산 33%, 은행·금융 31% 순이었다.
이 수치를 AI의 효과로 읽어서는 안 된다. 특정 플랫폼에 올라온 공고를 센 것이고, 경기와 채용 방식의 변화가 함께 작용한 결과다. 조사를 수행한 쪽도 대규모 공채에서 기존 인력 유지로 무게가 옮겨가는 신호로 해석했을 뿐 인과를 규명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세 자료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것은 있다. 조직의 위계와 초기 경력의 자리가 지금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피하기 어려운 질문이 하나 남는다.
주니어가 경험을 쌓던 일이 줄어든다면 미래의 시니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때문에 AI 시대의 학습은 AI 사용 교육으로 끝날 수 없다.
주니어가 실제 근거를 직접 읽게 해야 한다. AI의 결과를 반박하게 해야 한다. 왜 이 결과가 틀렸는지 설명하게 해야 한다. 좋은 결과의 기준을 직접 정의하게 해야 한다. 일부 업무에서는 AI보다 사람이 먼저 생각한 뒤 AI의 답과 비교하도록 만들 필요도 있다.
굳이 비효율을 보존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판단력이 형성되는 경험까지 함께 없애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설계해야 할 Human–Agent Operating Model
지금까지의 논의를 조직 설계 관점에서 묶어보면 여섯 가지가 남는다.
먼저 비즈니스 성과가 있어야 한다. AI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더 좋은 품질로 바꾸려는지부터 정해야 한다.
다음은 업무 구조다. 지금의 업무를 프로세스와 활동, Task 수준으로 내려가 실제 어떤 일이 가치를 만드는지 본다.
그다음 위임 경계를 정한다. 없어져도 되는 일은 무엇인지, AI에 맡겨도 되는 일은 무엇인지, 사람과 AI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 계속 직접 경험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구분한다.
그 위에서 역량 배치를 한다. 필요한 역량을 무조건 사람의 직무기술서 안에 넣지 않는다. 사람, AI Agent, 시스템, 제품 중 어디에 둘 것인지 결정한다.
그리고 판단과 평가가 필요하다. 무엇을 좋은 결과라고 부를 것인지, 어떤 근거가 필요한지,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지, 어디부터는 AI가 자율적으로 처리해도 되는지 기준을 만든다.
마지막은 학습과 거버넌스다. 실제 실행에서 발생한 실패를 기록과 피드백으로 남기고, 다시 평가 기준과 시스템 개선으로 연결한다. 동시에 승인 권한과 책임의 경계도 분명히 한다.
AI를 하나 더 도입하는 문제라기보다, 조직이 일을 수행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짜는 문제다.
앞으로 기업이 답해야 할 질문도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다.
AI가 직원의 일을 얼마나 대신할 수 있는가만 물어서는 부족하다.
어떤 일은 앞으로 없어져야 하는가. 남은 일은 사람과 AI 사이에 어떻게 다시 나눌 것인가. AI가 실행을 맡은 뒤 사람에게 어떤 판단이 남는가. 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숙련자의 좋은 판단을 어떻게 개인의 경험에서 조직의 평가 기준으로 바꿀 것인가. 그리고 어느 순간만큼은 반드시 사람이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가.
이 질문들이 연결되어야 AI Workforce는 자동화 프로젝트를 넘어 운영모델의 변화로 이어진다.
Human Premium의 본질
AI 시대에 사람이 더 가치 있어지는 이유는 AI보다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대신 사람은 더 적은 수의, 더 중요한 판단을 맡게 된다.
한 번의 판단이 하나의 보고서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을 수 있다.
하나의 평가 기준이 이후 수천 개의 결과물에 적용될 수 있고, 하나의 정책 결정이 수백 개 Agent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Human Premium을 문제 해결력, 비판적 사고, 창의성, 커뮤니케이션 같은 역량 이름만으로 설명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그 역량이 어떤 업무에서 어떤 판단으로 사용되고, 그 판단이 사람과 AI로 구성된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는가까지 봐야 한다.
결국 세 가지가 남는다.
판단(Judgment). 무엇이 맞는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학습(Learning). 한 번의 경험과 실패를 다음 시스템의 개선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책임(Accountability). 마지막에는 누군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조직의 경쟁력은 이런 사람을 몇 명 보유하고 있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들의 판단을 가장 영향력이 큰 곳에 얼마나 잘 배치할 수 있는가로 결정된다.
AI 전환의 목표는 사람을 업무 흐름에서 가능한 한 많이 빼내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덜어내되, 사람이 해야 할 판단은 더 선명하게 만들고 그 판단의 영향력은 더 크게 만드는 것.
AI 시대에 사람의 판단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는 판단의 수가 늘어서가 아니다. 한 번의 판단이 닿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글 AI를 도입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일을 알고 있는가에서 일의 구조를, AI에 집중할수록 AX는 실패한다에서 일하는 방식을, 완벽한 AX 로드맵을 가진 조직이 실패하는 이유에서 그 방식을 유지시키는 평가체계를, AI를 잘 쓸수록 내가 손해라면, 누가 AI를 쓰겠는가에서 일하는 사람의 유인을 다뤘다. 이 글이 다루는 것은 그 위에 남는 질문이다. 실행을 AI에 넘긴 뒤, 사람에게는 어떤 판단을 남길 것인가.
About Seigniter
시그나이터(Seigniter)는 기업의 AI 도입을 넘어, AI로 실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AX(AI Transformation)를 고민하는 컨설팅펌입니다.
어떤 AI 기술을 쓸지부터 정하기보다 기업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지 살펴봅니다. 어디에서 비효율과 병목이 생기는지, 어떤 판단과 반복 작업이 있는지 파악하고 사람과 시스템, AI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 설계합니다.
기업의 전략과 현장, 비즈니스 문제와 AI 기술 사이에는 아직 큰 간극이 있습니다.
시그나이터는 이 간극을 연결해 AI가 실제 업무 안에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합니다.
AI를 도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을 설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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